단어의 숲 & Soup

복 vs Blessing

think-2025 (숲 & Soup) 2025. 3. 4. 21:00

 

복 vs Blessing : 진정한 '복'의 의미에 대하여

 

더하기의 세상에서 숨 쉬기

어릴 적부터 우리는 '더하기'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연봉, 더 넓은 집... 이 모든 것들이 축적되면 행복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으면서요.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누는 인사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이 평범한 인사 속에도 '복은 받는 것'이라는 관념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복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처럼 생각하고, 우리는 그것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런 '더하기' 문화는 우리의 DNA에 깊이 새겨진 듯합니다. 학창 시절엔 더 많은 지식을, 사회에 나와서는 더 많은 경력을, 가정을 꾸리면 더 많은 물질적 안정을,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가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행복의 본질을 찾아서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볼까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들의 본질은 무엇이었나요?
 
퇴근 후 발을 조이던 구두를 벗는 순간의 해방감.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 홀가분함. 오랜 병마에서 벗어나 깊게 숨을 들이쉬는 첫 순간. 승진의 기쁨보다는 퇴근 후의 평온함. 새 집을 장만한 성취감보다는 모든 짐을 정리한 후의 깔끔함. 새로운 관계의 설렘보다는 독립적인 시간 속에서 느끼는 고요함.
 
이 모든 순간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얻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그것은 흔히 성취의 정점이 아니라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복의 본질에 대한 재고찰

복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BLESSING'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비록 어원학적으로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단어에서 우연히 'LESS'(덜한, 더 적은)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ING'(~하는 중)까지요. 이는 마치 우리에게 복이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에서도 모두 비움의 가치를 이야기해왔으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외부의 조건이 아닌, 내면의 평화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불교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천 개의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 한 개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더 큰 자유를 준다." 얼마나 역설적인 지혜인지요. 

 

서양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도 비슷한 통찰을 나눕니다.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그는 '소유 지향적 삶'과 '존재 지향적 삶'을 대조합니다. 전자는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후자는 충만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프롬은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닌 존재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복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단순히 '더 많이 가지세요'가 아니라, '당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만 얻고, 그 외의 모든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현대 사회의 채움의 함정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하라고 요구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이 경험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더해갈수록 우리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마음은 복잡해집니다. 소유물이 늘어날수록 그것을 관리하는 부담도 함께 늘어납니다. 성취가 쌓일수록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집니다.
 
SNS에는 더 많은 경험, 더 화려한 여행, 더 아름다운 외모,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자랑하는 이미지로 가득하고, 소비 문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더하기'의 굴레에서 숨이 막힐 때까지 달리고 있습니다.
 
편리함을 위해 구입한 기기들은 오히려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인맥을 넓히기 위한 활동은 진정한 관계의 깊이를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를 더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소통, 더 다양한 선택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덜어냄이 가져다주는 자유

반면, 덜어낼 때 우리는 가벼워집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할 때,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을 때, 타인의 기대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정리된 방은 단순히 공간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함께 선물합니다. 불필요한 약속을 줄이면 시간뿐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도 되찾게 됩니다. 남들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덜어냄의 과정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면들과 재연결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질적 소유물이 줄어들면 그만큼 소중한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생깁니다. 사회적 기대와 의무에서 벗어나면, 진정한 자아와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덜어냄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를 넘어,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철학적 선택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질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우리의 관심을 전환시킵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에, 축적이 아닌 경험에, 외적 성취가 아닌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복의 진정한 의미 되찾기

복은 어쩌면 채움이 아닌 비움의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선택과 집중, 단순화와 정화, 이 모든 과정은 우리를 본질에 가까워지게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수백 개의 옷, 수천 개의 앱, 수만 개의 인맥? 아니면 마음의 평화, 자유로운 시간, 깊은 관계 몇 가지? 덜어냄은 단순한 버림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선별하는 지혜입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시장을 구경하며 말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의 이 통찰은 욕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필요와 욕망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있을까요?
 

덜어냄의 실천: 일상의 작은 혁명

오늘,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요? 어떤 부담, 어떤 기대, 어떤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 순간, 당신은 진정한 '복'의 의미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바로 확인하는 습관을 내려놓는 것으로 시작해볼 수 있을까요? 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셜 미디어의 소식을 놓치는 대신, 자신의 호흡과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장 입지 않는 옷들, 쓰지 않는 물건들, 유지할 필요 없는 관계들을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덜어냄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마치 정원사가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지를 치듯, 우리도 더 본질적인 삶을 위해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비워진 공간에 진정 원하는 것들을 채워갈 수 있습니다.
 

마치며: 새로운 관점, 복은 벗어남의 과정

우리가 어쩌면 오해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요? 복에 대하여 다시 살펴보니, 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욕망의 사슬에서, 두려움의 굴레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덜어냄의 지혜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덜 가지고, 덜 바쁘고, 덜 걱정하는 삶.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향하는 역설적인 여정일지 모릅니다.
 
B - Less - Ing : 우리에게 힘든 짐(Burden)이 되는 무언가를 덜어내는(Less) 과정이나 상태(Ing).
 
오늘부터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그동안 우리가 애써 쌓아온 것들 속에서가 아니라, 용기 있게 내려놓은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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