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숲 & Soup

런닝맨(Running man) vs 러닝맨(Learning man)

think-2025 (숲 & Soup) 2025. 3. 20. 07:04

멈추어 본 적 있나요? : 런닝맨과 러닝맨 사이에서

저희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런닝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업에서 21년 동안 인재를 육성하는 러닝맨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형형색색의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웃고, 울고, 뛰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짓던 그 시간들이 선명합니다.
 
아들은 런닝맨의 미션과 게임에 열광했고, 저는 그 속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달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재를 육성하며 보낸 21년의 시간은 저에게 '달리기'와 '배움'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런닝맨(Running man)'과 '러닝맨(Learning man)'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의미를 품은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달리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 여러분도 느끼시나요?

"내일까지 보고서 마감해야 하는데..." , "애들 학원 보내고 장보고 저녁 준비하고..." , "곧 있으면 프로젝트 발표인데 준비는 언제 다 하지..."
 
익숙한 독백들이 아닌가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마치 끝없는 달리기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심리학자 시그먼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사회(Liquid Society)'에서 우리는 모두 '런닝맨'이 되어 있습니다. 고체처럼 단단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흐르는 액체 같은 현대 사회에서, 잠시라도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를 끊임없이 달리게 합니다.
 
지난 주말, 다른 회사로 이직한 후 2년만에 만난 후배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습니다. "요새 어때?"라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한 숨을 쉬며 이야기했습니다. "정신없이 바빠요. 회사에서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가 쏟아지고, 집에 가면 육아가 기다리고... 숨 쉴 틈이 없어요."
 
그 후배의 이야기는 나만의,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이미 17세기에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디지털 기기와 SNS로 가득한 현대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SNS는 우리의 '런닝맨 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남들의 화려한 성취와 행복한 순간들만 보면서, 우리는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포모 현상(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고 부릅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우리를 더 빠르게 달리게 만듭니다.
 
런닝맨 프로그램의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는 '이름표 뜯기'입니다. 누군가는 쫓고, 누군가는 쫓기면서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쫓는 사람도, 쫓기는 사람도 모두 불안과 초조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지 않나요?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쫓으면서, 동시에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이중의 압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저는 매일 알람을 5개씩 맞춰놓아요. 일어나자마자 메일 확인하고, 출근길에는 뉴스 체크하고... 잠시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어느 30대 직장인의 이 고백은 현대인의 불안을 잘 보여줍니다.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이를 '현대인의 불안장애'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정보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우리 뇌는 과부하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왜' 달리는지를 잊은 채, 그저 '달리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목적지를 잊은 채 속도만 높이는 자동차처럼 말이죠.
 
한때 저도 그랬습니다. 기업에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더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끊임없이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왜 이렇게 달리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달려야 한다'는 명령에 따라 달리고 있었을 뿐, 제가 진정으로 가고 싶은 방향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달리고 있는 방향이, 정말 여러분이 가고 싶은 곳인가요?
 

멈춰 설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의 최적 경험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불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몰입 상태는 끊임없이 달릴 때가 아니라,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TV 런닝맨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참가자들이 미션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들입니다. 제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장면들도 대부분 멤버들이 미션에 완전히 빠져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빨리 달릴 때가 아니라, 주어진 과제에 모든 감각을 집중할 때 시청자들은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런닝맨을 10년 넘게 하면서 깨달은 건, 단순히 체력이 좋거나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제대로 읽는 능력'이에요."
 
유재석의 이 말은 삶에 대한 중요한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아는 것, 즉 '배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러닝맨(Learning man)'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달리기를 멈추고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고 물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48세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베이커리 자영업을 시작한 이전 직장의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0년 동안 저는 '런닝맨'이었어요. 승진하고, 실적 올리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 그것만 생각했죠.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건강 문제로 2개월간 병가를 냈어요. 그 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멈춤'을 경험한 거죠.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달리기만 했지, 배우지는 않았다는 것을요."
 
그 친구은 병가 중에 우연히 빵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회복 후 과감히 직업을 바꿨습니다. 지금은 작은 동네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매일이 다릅니다.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그날의 온도, 습도에 따라 빵이 달라져요. 이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 배우는 과정이 저를 살아있게 해요. 예전에는 목표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심리학자 엘렌 랭거는 이를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 그것이 바로 '러닝맨'의 핵심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마음챙김의 상태가 단순히 심리적 웰빙뿐만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업에서 인재를 육성할 때도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지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가장 성장이 빠른 직원들은 항상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배우는 깊이'에 집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구글,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멈춤의 시간'을 제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달리는 것보다, 때로는 멈춰 서서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더 큰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런닝맨이 러닝맨을 만날 때

TV 프로그램 '런닝맨'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달리기 대결이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런닝맨의 진정한 매력은 '달리면서 배우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던 멤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서로의 특성을 파악하고, 더 나은 전략을 세우는 과정... 그 '성장의 서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런닝맨'과 '러닝맨'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을요.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걷는 동안 가장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달리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달리는 이유와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달리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배움을 위해 달리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가 됩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인간 정신의 전체성을 강조하며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는 '런닝맨'과 '러닝맨'이 공존하며, 이 둘의 조화로운 통합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미친 듯이 달리고, 가끔은 천천히 걸으며 배우는 것... 그것이 제 삶의 리듬입니다."
 
50대 중반 소설가의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삶은 단순히 하나의 속도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리듬과 템포로 이루어진 교향곡과 같다는 것을요.
 

여러분만의 리듬을 찾아서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무의식에 의해 선택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사회의 기대나 타인의 시선에 따라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기업에서 인재 육성을 담당할 때 만난 한 젊은 직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입사 후 3년 동안 저는 그저 빨리 진급하기 위해 달렸어요. 상사가 시키는 대로, 회사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였죠. 그런데 어느 날 선배가 물었어요. '넌 왜 이 일을 하니?' 그 질문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 의미를 느끼는 것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 직원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종종 '왜'라는 질문 없이 달립니다. 사회의 기대, 부모님의 바람, 또래의 압력에 따라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죠.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선택하도록 선고받았다." 우리에게는 '런닝맨'으로 살 것인지, '러닝맨'으로 살 것인지, 혹은 그 둘의 균형을 찾을 것인지 선택할 자유와 책임이 있습니다.
 
TV 프로그램 '런닝맨'에서도 참가자들은 각자 다른 전략과 스타일로 게임에 임합니다. 우리 아들이 즐겨 보던 시절에도, 어떤 멤버는 체력으로 승부하고, 어떤 멤버는 두뇌로 승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잘 달리지 못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하지만 점점 제 방식을 찾아갔어요.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상황을 잘 읽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저만의 무기가 됐죠."
 
한 런닝맨 멤버의 이 고백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달릴 필요는 없다는 것, 자신만의 페이스와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오늘,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런닝맨'인가, '러닝맨'인가?"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속도는 나의 선택인가, 아니면 외부의 압력 때문인가?"
 
이런 질문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자체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본질이 아닐까요?
 
제가 기업에서 인재 육성 업무를 담당하며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을 찾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리듬을 찾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삶은 마치 긴 마라톤과도 같습니다. 때로는 전력 질주하고, 때로는 걸음을 늦추며, 때로는 완전히 멈춰 주변을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여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달리든, 걷든, 멈추든, 그 모든 순간이 여러분을 더 깊은 자아로 이끄는 여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런닝맨이 되든, 러닝맨이 되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정 '여러분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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